발효 간장의 막장시선
영화는 영화다. 웃고 즐길 코미디만이라면 [개그 콘서트]만으로도 충분하다.
8월 8일 나란히 개봉한 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많은 점에서 닮았다.
세종과 이덕무 등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팩션(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장르) 영화라는 점이나 유명 외화의 제목을 카피한 문장형 제목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효과적인 웃음 폭탄을 던지며 삐거덕거리는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참에 둘이 합쳐 [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 왕이로소이다]라는 새 영화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지 싶다.이 영화들은 웃기고 말겠다는 '의지'가 강한데, 그 부분에서 상당량 성공한다. (어떤 영화가 더 웃긴가 하는 것은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차태현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한 입담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성동일과 고창석을 비롯한 조연들도 썰렁하지 않은 웃음을 만들어낸다.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는 세종의 호위무사를 맡은 김수로와 임원희가 웃음 제조기다.
세자빈 역할을 맡은 이미도가 등장할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발 구르는 소리가 난다. 이렇게 웃다 지쳐 눈물까지 쏙 빼는 상황이 영화관을 나올 때까지면 좋으련만,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스토리 때문에 영화는 갈수록 '1초'보다 길게 느껴진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자.
서빙고의 얼음을 훔치려던 이덕무(차태현)의 조직은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행복한 결말에 이르지만, '정말 얼음을 훔친 것인가?'라는 것에 그렇다는 답을 주지 못한다. 탐관오리가 독점한 나라의 얼음을 어떻게 녹지 않게 빼내고 다시 집어넣느냐, 이것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기대하는 진짜 재미인데, 주야장천 땅만 파다 끝이 난다.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경우는 더하다.왕이 되기 싫은 세자 충녕(주지훈)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노비 덕칠(주지훈)에게 궁을 맡기고 도망 다니는 줄거리는 궁을 나가더니 점점 산으로 간다. 세자가 세상을 보고 돌아와 성군이 되는 드라마를 보여주겠다더니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엄마 말씀만 들려주는 꼴이다. 영화는 영화다. 웃고 즐길 코미디만이라면 [개그 콘서트]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나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는 캐릭터가 살아 있다. 이덕무는 총명하나 서자 출신의 한계 때문에 조용히 살아가는 이다. 실제로 '책만 아는 바보'인 그가 영화 속에선 샌님이 아닌 전략가로 활약하는데, 그 모습이 제법 잘 어울린다. 똑똑하지만 그악스럽진 않고, 일견 선하고 따뜻하기까지 한 차태현의 연기 톤 때문이다. 차태현의 가벼움을 입은 이덕무는 '조선판 [도둑들]'을 이끄는 마카오 박처럼 믿음직하다. 서빙고를 터는 인물들 역시 자신만의 유머 코드를 가지고 움직인다.
폭탄 전문가 대현(신정근)의 귀가 안 들린다든가, 변신 귀재 재준(송종호)을 다른 이들이 계속 못 알아본다는 식인데, 이런 유머는 캐릭터의 개성을 굳히면서 유발되는 웃음이라 억지스럽지가 않다. 허술하기 그지없는 얼음서리를 하면서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볼 만한 이유는 이런 요소 때문이다.
반면 [나는 왕이로소이다]의 등장인물은 전체적으로 방정맞거나 바보처럼 군다. 성군의 싹수를 보이는 충녕이나 청렴하고 강직한 황희 정승(백윤식)조차도 그렇다. 위대한 위인들을 가볍고 경쾌하게 재조명 하려는 의도는 없고, 왕이고 정승이고 노비고 간에 계급장 떼고 웃기는 데 주력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굳이 충녕을 1인 2역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의문이다. 궁 밖으로 철딱서니처럼 구는 충녕이나 궁에 들어와 바보처럼 구는 덕칠이나 아무리 봐도 같은 인물인데 말이다. 연기를 떠나 1인 1역처럼 보이는 캐릭터를 굳이 둘로 나누니 러닝타임만 길어지는 것이다. 덕분에 주지훈의 꽃미모는 원 없이 보았다. 이건 화보가 아니라 영화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