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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여름, 부산항을 향해 가고 있는 미 해군 상륙함. |
파괴된 수원 화성 장안문. 탈환과 재탈환의 과정 속에 수원은 크나큰 피해를 입는다. 연합군의 주요 수송로가 수원을 통과했기 때문에 많은 군인이 이곳을 지날 때마다 기념촬영을 하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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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폭격으로 파괴된 기차들. 철로 끝으로 서울역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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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 부대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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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군사고문단의 감독하에 국군 신병들이 M-1 소총 사격 훈련을 받고 있다. 그들은 여덟 내지 아홉 발 정도를 쏴본 뒤 부대로 배치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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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휴전 회담이 열렸던 개성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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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왕실기갑연대 대원들이 전투에 임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51년 1월 중공군의 2차 공세를 앞둔 시기로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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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방 지역에서 미군 병사들이 북한군 포로들을 심문하고 있다. 북한군은 민간인 복장을 하고 피란민 인파에 잠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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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포로수용소의 포로들. 유엔 측이 1951년 초반에 세운 이 수용소는 총 28개 시설에 최대 17만명의 포로를 수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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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봄, 재탈환된 서울 시청 앞에 어린이들이 서 있다. 사진으로는 피해 상태가 경미한 듯 보이지만, 연희고지 등 북한군의 저항이 극렬했던 일부 지역은 유엔군의 집중포격으로 폐허가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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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만난 아이들. 한국전쟁 동안 약 10만여 명의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는데, 그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물자나 시설은 거의 전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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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를 보기 위해 모여든 아이들과 어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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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모여 빨래를 하는 아낙네들. 전쟁 중에도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생필품만 챙겨 어디론가 떠나는 피란민 가족. 어머니의 왼손가락에서 반짝이는 반지는 아버지의 부재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당시 대부분의 성인 남자는 징집 당했고, 이는 피란민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철로변에서 물건을 파는 소녀 물건팔러 나온 아낙네들
6.25 동란 당시 시장통의 막걸리 대포집
6.25 동란 당시 부산 구덕산 아래의 중구 부평동 시장과 보수천 주변에서 금붕어를 팔러 다니는 금붕어 장수(1952년) 드럼통을 잘라 해머로 두드려 펴서 용접시킨 후 페인트를 발라 제작한 택시 대용의 운송 수단이었던 마차 객실
추위를 견디기 두껍게 입고 나무상자로 만든 가판에서 장사하는 모습
집을 잃고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더위에 지친 피난민 가족(1951년8월16일) 유엔군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위해 철로옆에 들어선 부산의 공구상들(1951년) 흰 수염을 길게 기르신 어르신의 가판 잡화점
을지로 입구 광통관 5사단 본부앞 나무 팻말
지금 현재 우리은행 전신인 조선상호은행 종로지점과 여물을 먹고 있는 소
당시 소방차가 출동하여 화재를 진압하는 모습
1951년 11월 30일 부산시 부전동 제일조병창 발화로 화약고 1동 및 민가 100여 채 전소된 모습. 4명 사망, 6명 중상. (1951. 12. 1, 동아일보)
진열장을 콘크리트와 타일을 붙여 제작한 옛날의 시계포
거리의 담배 노점상
당시는 담배 제조기술이 없어서 미국 양담배를 받아 팔았는데 꽁초를 주워 봉지에 넣어 파는 봉초도 팔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경성우체국이라고 불렸던 옛 중앙 우체국
적벽돌의 청동 지붕으로 제작된 르네상스식 건물이엇던 이 건물은 미적 가치가 있었으나 1년 뒤 전쟁으로 인하여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영도 피난민촌 모습 한국전쟁 당시 대구 신천변에 피난민들이 만든 방천뚝 피난촌 종로 화신백화점
일제 강점기 화신그룹의 박흥식씨가 세운 이 백화점은 장안의 명소였습니다.
6.25 동란 1년전까지 온전했었던 남대문
삼각지 근처의 미8군 기지 주변 물을 받기위해 줄을 길게 세운 양동이 서울역 앞의 대동 예식장과 사진관
건물 앞에 노점을 편 사진사와 구두 수선공과 지겟군 및 엿장수
분수대 속의 결빙된 빙판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
미군에게 초콜릿을 나눠받는 아이들
당시 짐운반 인력꾼으로 활약했던 지겟꾼
32사단 앞 모래도로
6.25 동란 당시 경기도 수원 화성 장안문(1953년8월11일)
성벽에 올라가 놀고 있는 해맑은 모습의 어린이들 제일연합본부라고 쓰인 간판이 보이는 도로변 드럼통위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뒷 배경은 남산)
추운 겨울 목도리를 감고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
서울역 앞 대동예식장과 멀리보이는 남대문 모습
6.25 동란 당시 대구시내의 중국집 유흥원(1952년) 부산 황령산 아랫동네 (1953년)
부산 황령산 아랫동네 중국집 귀영루(1953년)
동란이 지난 1년 후 서울 영등포의 중국집 영등각(1954년)
부산의 중국집 복해원(1953년) 이발소와 양복점
당시는 대부분 한문 글씨로 적힌 간판들이었습니다.
용산 공공기관 지점 앞의 가판 노점상
플라스틱 물자가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 대부분 목재를 이용하여 만든 상점의 문과 매대 및 노점상의 가판
서울 시가지 서민의 발이되었던 109호 전차 종로에서 설렁탕을 팔았던 식당과 그 앞의 노점상
사진관과 세탁소 그 옆에 양복점
푸줏간에서 도살한 고기를 나르는 마부 청년
옹기 장터 앞에서 곰방대를 물고 있는 여성
장터의 수수떡 호떡 장사와 화물 자전거 위에 철망으로 엮은 나무 상자속에 가두어 놓은 닭을 파는 닭장사꾼
장터의 반찬 가게 풍경
장터의 쌓여있는 배추와 무
6.25 동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1년전 평화로웠던 인천 도원동 배다리 마을 장터 풍경(1949년)
6.25 동란 당시 대구역과 주변 풍경(1952년) 과일을 파는 노점을 지키는 어린꼬마와 미군들
추운겨울 국수를 먹는 아이
사탕이 먹고 싶어 사탕노점에 모여든 아이들
아버지 따라 장사나온 소년
청계천에 밥도둑 개장집
길죽한 밀가루 빵을 굽는 아저씨
기름에 튀기는 듯한데 어떤 음식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뻥~이요 뻥튀기 기계
청계천 풍경
시장안에 고무신 가게
멍게 파는 노점상 건어물가게 아저씨
부산 토성동 왕표연탄 공장
1950년대 서울 도심에서 바라본 한강의 전경사진. 푸르른 강물이 한 폭의 그림처럼 옛 정취를 갖게하는 노스탤지어를 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