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노력의 대가로 얻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소소함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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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산책/가수 음악

낭만에 대하여

정부혜 2020. 12. 13. 14:48

[낭만에 대하여]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부산진역을 출발해 포항까지 145.8km를 빼어난 바닷가 절경을 보며 두 시간에 걸쳐 달리는 동해 남부선...

1930년 개통당시의 출발역이었던 부산진역을 대신해 지금은 서면 로타리 인근 부전역에서 출발한다.
이 존재감 없는 기차 노선은 훗날 이 땅의 중년 세대를 위무하고 울리는 대중가요의 결정적인 모티브(motive)가 된다.

검은 교복, 얼룩무늬 교련복에 양은 도시락을 담은 김치 국물이 밴 가방을 옆에 끼고 통학하던 시절...

'낭만에 대하여' 노랫말이
이 기차간에서 탄생한다.
최백호는 지금은 부산광역시에 편입된 동래군 일광면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부친은 29세에 부산에서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최원봉님...
최백호가 태어난 그 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일광초등학교 교사로서 최백호를 홀로 키웠다.

일광역에서 동래를 거쳐 부산서면을 느릿느릿 오가던 동해남부선 통학 완행열차...
최백호가 청소년기에 짝사랑한 첫사랑 그 단발머리 소녀 박경희를 만나는 설렘으로 기차에 올랐던 역광장은 이젠 주차장으로 변했다.

이젠 십대의 수줍음과 설렘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대목이다.

그 후, 결핵으로 군대에서 조차 쫒겨난 20대 초반의 대책 없는 반거지 신세의 청년 최백호...

유일한 버팀대였던 어머니 마저 돌아가시고 "내마음 갈 곳을 잃었던" 시절, 밥만 준다면 뭐든 다 했다.

서면 동보극장 간판 그리는 일도 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간판도 그렸다.
먹고 살기 위해 그리던 솜씨가 지금 꽤 잘나가는 화가가 된 계기가 된다.

가진것 없어 굶주릴 당시 청춘을 저주하며 자주 들락날락거리던 동래시장 입구 거리...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던 농담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던" 바로 그 거리다.

그때 여종업원에게 LP 재킷을 달래서 보니까 라는 연주곡, "바바~밤 ~ 바바~밤~"
이렇게 시작하는 곡을 한 스무번
이상 들었던 기억을 끄집어 내어 노래를 만든다.

부산항 제3부두 선착장,
지금은 국제선 선착장이 된 이곳,
그 시절 한 일본인 친구를 배로 떠나보낸 사연이 노랫말로 된다.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 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라"는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낭만에 대하여'는 이렇게
"왠지 한곳이 비어 있는"
중년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노래다.

듣는 이에게
"다시 못 올것에 대하여"
어서 느껴보라고 속삭인다.
'지나간 시절을 조용히 생각해보니 그것이 첫사랑이었다'는
그런 말들과 고스란히 일치 한다.

아무도 기억않던 숨은 이야기를 가만히 생각하게 하는 노래,
뒤돌아보면 모두 그립고 아쉬운 시간들...
돌아가고픈 그 시절들에 대해 추억해 보라고 속삭인다.
흘러 가버린 세월...
낭만은 아득하고 추회(追懷) 마저 아련히 긴긴 세월 속에서 야위어만 간다.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 작사/작곡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 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잊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깊어가는 겨울 오늘도 행복하세요


낭만에 대하여 - 최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