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가 고운 탑리
능소화 같은 여인을 만나고 싶나요?
경북 의성군 탑리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 혹시 들리지 않았나요? 등 뒤로 와 꽂히는 아픈 시선 하나 느껴지지 않았나요?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질 않고, 담장 너머로 고개 내민 다홍빛 꽃송이만 환히 빛나는…. 네. 바로 그녀입니다, 능소화.
저무는 강
능소화 피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능소화가 피어나면 장마가 온다는 말이 있지요. 옛말 그른 말 없다더니, 이즈음 장마철입니다. 그래서 우중충한 골목길에 능소화 다홍빛이 더더욱 선연히 느껴지는 지도 모릅니다.
능소화는 선비와 같은 품위와 기개를 지녔다고 하지요. 고고하게 꽃송이를 피어 올렸다가 어느 날 갑자기 통꽃 그대로 툭 떨어져 한 시절을 마감하는 모습이 말입니다. 그 건 마치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며 사는 것보다 차라리 목을 꺾는 게 선비다운 삶이라는 비유에서겠지요. 양반들은 능소화의 그 모습을 사랑해 집안에 심길 즐겼고, 이름도 양반꽃이라 했다는군요.
탑리역
능소화를 부르는 이름은 이 밖에도 많습니다. 넝쿨을 높이 감고 올라가 피는 꽃이라 해서 금등화(金藤花)라 하기도 하고, 임금을 사모하다 궁궐의 담장 밑에 피었다고 해서 ‘구중궁궐의 꽃’이라 부르기도 한다지요. 하룻밤 임금의 성은을 입었던 한 궁녀가 오지 않는 임금을 기다리다 꽃이 됐는데, 조금이라도 멀리 보려는 듯 담장 높이 올라가 피고, 발자국 소리라도 들으려는 양 잎을 크게 벌려 꽃을 피운답니다.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라고 노래한 이해인 수녀의 <능소화 연가>며 ‘…이글거리는 밀납 같은. 끓는 용암 같/ 은, 염천을 능멸하며 붉은 웃음 퍼올려 몸 풀고 꽃술 달고 쟁쟁한/ 열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능소(凌凌)야 능소(凌凌)야…'라고 노래한 김선우의 <능소화>도 떠오르는 요즘이지만, 한 시골마을에서 본 푸른 슬레이트지붕 옆에 핀 능소화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기품있고 단아한 5층탑
의성군 금성면 탑리라는 작은 마을에서였습니다. 대구와 안동 사이, 경상북도 중앙에 위치한 의성은 마늘로 유명한 곳이지요. 관광지로는 여름에 얼음이 얼고 찬 바람이 나오는 빙계계곡과, 신라 때의 고찰 고운사가 있어 외지 관광객이 드나들긴 하지만 그리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닙니다.
의성에서도 금성면의 탑리는 국보 77호로 지정된 5층 석탑이 있어서 마을 이름도 탑리라 불리는 곳입니다. 탑리 5층 석탑은 통일신라 때의 탑으로, 한눈에 보기에도 그 모습이 남달한국 석탑양식의 발전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탑산온천
그런데 단아하면서도 장중한 아름다움을 지닌 5층 석탑과 달리 그 석탑을 품고 있는 탑리마을은 풀썩풀썩 서글픔을 일게 하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어느 시골마을이나 다 그러하지만, 젊은이들이 떠난 시골마을은 쇠락의 기운이 역력했습니다. 한 때는 아이들이 해지도록 시끌벅적하게 뛰놀았을 동네는 더없이 고요했습니다. 허물어져내리는 빈 집들과, 정물처럼 앉아 있는 남루한 노인들의 모습…. 지나가는 차들이 가끔씩 울리는 클랙슨 소리가 유일하게 정적을 깨뜨렸습니다.
시내버스 승강장에는 오래도록 버스도, 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까치만화방을 지나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다가 아,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습니다. 녹슨 대문이 매달린 시멘트 담벼락에 붉은색 페인트로 써놓은 정겨운 문구! ‘소변금지’. 그 옆엔 선명한 가위 그림까지 빼놓지 않고 곁들여 놓았더군요.
정겨운 낙서
그리고 보았습니다. 흙담벽을 타고 파란 슬레이트 지붕 위로 오르던 능소화 꽃더미를. 푸른 색과 어우러진 선홍색 꽃송이가 처연하도록 아름다웠던 그 능소화를….
*가는 요령
쓸쓸한 정류소
중앙고속도로 - 의성IC - 927번 지방도로 - 탑리 - 옛 면사무소 언덕 자리에 5층 석탑이 있다. 탑리여중 건너편이다.
*특산물
의성마늘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외국에서 들여온 남도마늘(올마늘), 대서마늘(스페인종)과 달리 조상대대로 재배해 온 신토불이 마늘로, 국내 마늘 생산량의 3.5%에 불과하지만 전국에서 알아주는 특산품이다. 의성마늘의 특징은 쪽수가 6∼8쪽이고, 논에서 재배돼 깨끗하고 청결하다. 크기는 작지만 즙액이 많고 매운맛과 강한 저장성을 자랑한다. 김치를 담글 때 적은 양을 사용해도 빨리 변질되지 않고 매운 맛 등 다섯 가지의 맛이 고루 함유돼 뛰어난 김치를 담을 수가 있다. 의성마늘은 한치형 마늘로 6월중순 이후에야 수확이 가능해 시중에는 7월부터 유통되므로 그 이전에 의성마늘이라고 판매하는 건 가짜라고 볼 수 있다.
파란지붕의 능소화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저무는 들판
능소화 같은 여인을 만나고 싶나요?
경북 의성군 탑리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 혹시 들리지 않았나요? 등 뒤로 와 꽂히는 아픈 시선 하나 느껴지지 않았나요?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질 않고, 담장 너머로 고개 내민 다홍빛 꽃송이만 환히 빛나는…. 네. 바로 그녀입니다, 능소화.
저무는 강 |
능소화 피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능소화가 피어나면 장마가 온다는 말이 있지요. 옛말 그른 말 없다더니, 이즈음 장마철입니다. 그래서 우중충한 골목길에 능소화 다홍빛이 더더욱 선연히 느껴지는 지도 모릅니다.
능소화는 선비와 같은 품위와 기개를 지녔다고 하지요. 고고하게 꽃송이를 피어 올렸다가 어느 날 갑자기 통꽃 그대로 툭 떨어져 한 시절을 마감하는 모습이 말입니다. 그 건 마치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며 사는 것보다 차라리 목을 꺾는 게 선비다운 삶이라는 비유에서겠지요. 양반들은 능소화의 그 모습을 사랑해 집안에 심길 즐겼고, 이름도 양반꽃이라 했다는군요.
탑리역 |
능소화를 부르는 이름은 이 밖에도 많습니다. 넝쿨을 높이 감고 올라가 피는 꽃이라 해서 금등화(金藤花)라 하기도 하고, 임금을 사모하다 궁궐의 담장 밑에 피었다고 해서 ‘구중궁궐의 꽃’이라 부르기도 한다지요. 하룻밤 임금의 성은을 입었던 한 궁녀가 오지 않는 임금을 기다리다 꽃이 됐는데, 조금이라도 멀리 보려는 듯 담장 높이 올라가 피고, 발자국 소리라도 들으려는 양 잎을 크게 벌려 꽃을 피운답니다.
‘이렇게 바람 많이 부는 날은/ 당신이 보고 싶어/ 내 마음이 흔들립니다’라고 노래한 이해인 수녀의 <능소화 연가>며 ‘…이글거리는 밀납 같은. 끓는 용암 같/ 은, 염천을 능멸하며 붉은 웃음 퍼올려 몸 풀고 꽃술 달고 쟁쟁한/ 열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능소(凌凌)야 능소(凌凌)야…'라고 노래한 김선우의 <능소화>도 떠오르는 요즘이지만, 한 시골마을에서 본 푸른 슬레이트지붕 옆에 핀 능소화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기품있고 단아한 5층탑 |
의성군 금성면 탑리라는 작은 마을에서였습니다. 대구와 안동 사이, 경상북도 중앙에 위치한 의성은 마늘로 유명한 곳이지요. 관광지로는 여름에 얼음이 얼고 찬 바람이 나오는 빙계계곡과, 신라 때의 고찰 고운사가 있어 외지 관광객이 드나들긴 하지만 그리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닙니다.
의성에서도 금성면의 탑리는 국보 77호로 지정된 5층 석탑이 있어서 마을 이름도 탑리라 불리는 곳입니다. 탑리 5층 석탑은 통일신라 때의 탑으로, 한눈에 보기에도 그 모습이 남달한국 석탑양식의 발전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탑산온천 |
그런데 단아하면서도 장중한 아름다움을 지닌 5층 석탑과 달리 그 석탑을 품고 있는 탑리마을은 풀썩풀썩 서글픔을 일게 하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어느 시골마을이나 다 그러하지만, 젊은이들이 떠난 시골마을은 쇠락의 기운이 역력했습니다. 한 때는 아이들이 해지도록 시끌벅적하게 뛰놀았을 동네는 더없이 고요했습니다. 허물어져내리는 빈 집들과, 정물처럼 앉아 있는 남루한 노인들의 모습…. 지나가는 차들이 가끔씩 울리는 클랙슨 소리가 유일하게 정적을 깨뜨렸습니다.
시내버스 승강장에는 오래도록 버스도, 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까치만화방을 지나 어느 골목으로 들어서다가 아, 탄성을 내지르고 말았습니다. 녹슨 대문이 매달린 시멘트 담벼락에 붉은색 페인트로 써놓은 정겨운 문구! ‘소변금지’. 그 옆엔 선명한 가위 그림까지 빼놓지 않고 곁들여 놓았더군요.
정겨운 낙서 |
그리고 보았습니다. 흙담벽을 타고 파란 슬레이트 지붕 위로 오르던 능소화 꽃더미를. 푸른 색과 어우러진 선홍색 꽃송이가 처연하도록 아름다웠던 그 능소화를….
*가는 요령
쓸쓸한 정류소 |
*특산물
의성마늘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외국에서 들여온 남도마늘(올마늘), 대서마늘(스페인종)과 달리 조상대대로 재배해 온 신토불이 마늘로, 국내 마늘 생산량의 3.5%에 불과하지만 전국에서 알아주는 특산품이다. 의성마늘의 특징은 쪽수가 6∼8쪽이고, 논에서 재배돼 깨끗하고 청결하다. 크기는 작지만 즙액이 많고 매운맛과 강한 저장성을 자랑한다. 김치를 담글 때 적은 양을 사용해도 빨리 변질되지 않고 매운 맛 등 다섯 가지의 맛이 고루 함유돼 뛰어난 김치를 담을 수가 있다. 의성마늘은 한치형 마늘로 6월중순 이후에야 수확이 가능해 시중에는 7월부터 유통되므로 그 이전에 의성마늘이라고 판매하는 건 가짜라고 볼 수 있다.
파란지붕의 능소화 |
이준애<여행 칼럼니스트>
저무는 들판 |
'뉴스 여행 연예 > 여행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의 10대 古都 (0) | 2008.07.08 |
---|---|
베르사이유 궁전을 가다 (0) | 2008.06.29 |
한국민속촌 그 곳에서 (0) | 2008.05.21 |
한번쯤 가보고 싶은 드라이브 코스.. (0) | 2008.05.06 |
발리섬 여행후기 (0) | 2008.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