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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지색 양귀비와 현종의 사랑-

정부혜 2010. 3. 11. 23:44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천하일색 양귀비의 실제 모습)

 

                   -경국지색 양귀비와 현종의 사랑-

 

양귀비의 본래의 이름은 양옥환으로 고대 중국 당나라 현종의 18째 아들

수왕의 비였다. 당시 나이는17세로 현종의 며느리다.

그런데 현종의 아내인 무혜비가 죽자, 의욕상실증에 걸려 정사를 돌보지

않고 넋을 잃고 있다가 어느날 연회석상에 참석한 그녀를 보자마자 갑자기

눈에 광채가 빛나고 생기가 돌아 한 눈에 반해 시아버지의 체통도 망각하고

그녀를 후궁으로 받아들였다. 

 

즉 요즘 말로 불윤이고 퇴페다. 아들한테는 다른 며느리를 구해주고 양옥환

과 이혼을 시켜버렸다.

예와 도를 중시하는
중국에서는 매우 충격적이어서 많은 지탄받을 받았다.그러나 22세와 57세로

무려 35년의 나이 차이긴 하지만 찰떡궁합으로 뜨거운 사랑을 불태우며,왕후

다음의 서열인 "귀비"의 칭호까지 책봉하였다.

 

재색을 겸비한 양귀비는 강짜가 심하고 주위의 후궁들을 모두 내쫓고 친인

척을 끌여들여 정사에도 관여했다. 원성이 높자 양귀비에 대한 불평을 

무마하기 위해 현종은 일단 양귀비를  먼 지방으로  폐출 시킨 몇년  후

그리움을 참지 못해 다시 궁으로 불러들이는 편법까지 동원했다.

 

다시 궁으로 들어 오게된 사연은 양귀비의 근황이 궁금하여 신하를 보내

었는데  양귀비는 현종을 사랑하는 일편단심의 징표로 수년간 기른 머리

를 싹뚝 짤라  현종에게 보내었더니 비단결의 머리를 보고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즉시 입궁시켰다고 한다.

 

그 당시 양귀비의 윤기흐르는 머리가 너무 아름다워 지금도 머리염색약

중에 유명제약회사에서 양귀비의 상호를 쓰고 있으니 양귀비의 비단결

흑색머리결은 흰얼굴 옥안(玉顔) 못지 않게 천하일품이었나보다.

그런데 양귀비는 얼굴만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라, 노래와 춤도 뛰어났고,

총명하고 지적으로 특출하였으며특히 비파의 명수였다.
게다가 머리 회전이 빨라 현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마음을 사로잡자

일국의 황제를 손에 쥐고 마구 흔들었다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뜨거운 사랑을 노래

한 시(詩) '장한가(長恨歌)'가 유명하며 헌종과 양귀비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 하기도 하였다.

 

                        "장한가의 일부"

 

    -7월7일 칠석날 장생전에서

           인적없은 깊은 밤 속삭이던 말

                 하늘에 나는 새가 되면  "비익조"가 되고

                       땅의 나무가 되면  "연리지"가 되고 싶다.

                            하늘이 길고 땅이 영원해도 끝날 날이 있건만.

                                         우리 사랑  한은  끊일 때가  없으리라........

 

그런데 이렇게
두사람이 사랑에 빠졌을 무렵 양귀비의 수양 아들인 동시에 숨은 애인인

나이가 20살이나 더많은 40살의 "안록산"이 반정을 일으켰다. 근위병사

들은 현종에게 양귀비를 죽일 것을 강요하자


결국 현종은 사랑하는 양귀비에게 스스로 목을 맬 비단천을 내어줄 수

밖에 없었고 자살케하여 결국 38의 나이로 마외역관 배나무에 목을 메고

자결케하여 화려하면서도 비운에 요절하여 생을 마감하였다.

이를 두고 가인박명이라 했던가?

그리고 지금도 마외관의 그 자리엔 양귀비의 무덤이 있다. 흥미있는 사실은

흙무덤의 높이가 예전에 비해 현저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양귀비 무덤의 흙으로 팩을 하면 피부가 좋아지고 예뻐진다는

믿지 못할 소문을 듣고 무덤의 흙을 마구 가져갔기 때문이란다.

하는 수 없이 지금은 돌과 시멘트로 봉분을 모두 싸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옛날에는
지금의 미인의 기준과는 좀 달랐던 것 같다. 당시 왕실의 시인으로 있었

던 이태백은 양귀비에 대하여 '허리가 굵어 몸매가 아름답지 못하고 용모

도 그리 신통하지 못하다'는 내용의 시(詩)를 썼다. 사실 양귀비의 키는

164cm.체중은 69kg이었으니 볼품없는 뚱녀로 이태백의 눈은 정확하였다

고 볼 수있겠다.

시를 읽고
발끈한 양귀비가 현종을 충동질하여 이태백을 먼 나라로 귀양 보내 버렸다.

궁중시인을 귀양까지 보낼 정도니 얼마나 권력이 막강했는지 짐작이 간다.

하기야 치마폭에 쌓여 있었으니 그정도 부탁이야 식은죽 먹기가 아닌가?

 

그리고 현종은 양귀비가 자결하자 그에 대한 그리움과 인생무상과 쓸쓸함을

견디지 못해 외로움을 달래다가 78세로 그만 병사하고 말았다.

 

*참고*

너무도 유명한 사랑의 표현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비익조 (比翼鳥)는 전설에 나오는 새로 이새는 한쪽눈과 한쪽날개 밖에

없서어 암수가 함께 짝을지어야만 날아갈 수가있는 새를 말하며. 

연리지 (蓮理枝)는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로 가지가 엉키고 설키어  하나의

나무처럼 합쳐있는 나무로 비익조와 함께 남녀의 지극한 사랑을 표현한다.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에 대해서는 옛부터 너무도 유명하여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애기지만 사랑하기 좋은 호시절 봄날이 점차 다가오고 있어

소개를 하지만......

 

아무리 "비익조"와 "연리지"같은 지극한 사랑이라 할찌라도 윤리도덕과

정도와 순리를 저버린 사랑이라면 세인의 지탄을 받아 결국 사랑의 종말이

비극으로 끝난 다는 것을 한편 시사하고 있다하겠다.

                                                                                    도영

                                              (양귀비와 현종)

 

                                          (양귀비 꽃)

 

 -장한가 중의 일부-

 

꽃 비녀 떨어져도 집는 사람 하나 없고,

비취 깃털, 공작 비녀, 옥비녀도 버려졌네.

황제는 얼굴 가린채 구해주지 못하고,

돌아보는 얼굴엔 피눈물만 흘렀네.

(백거이의 <장한가> 중에서)


                                                                                                               (양귀비의 묘.  섬서성 흥평현 마외파에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