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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사육 돼지공장

정부혜 2018. 9. 17. 15:12

[한겨레21] 기자, 집단 사육 돼지공장에서 일하다…
쇠틀에 갇혀 3년여 6~7차례 새끼 낳고 식탁 위 상품으로

임신한 돼지가 좁은 스톨 안에 앉아 있다.


‘돼지공장’에서 핵심 기계는 모돈, 곧 어미돼지다. 어미돼지는 교배방, 임신방, 분만방으로 옮기면서 대략 다섯 달마다 새끼돼지를 ‘생산’한다. 임신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하고 그때마다 유산이나 사산 없이 건강한 새끼를 많이 낳아야 생산성 높은 ‘축산 기계’로 인정받는다. 우리나라 양돈장은 4500개 전후, 평균 2천 마리 이상을 공장식으로 밀집 사육하는 돼지공장이다.

돼지공장에서 어미돼지는 ‘스톨’(stall)이라 부르는 폭 60~75㎝의 좁은 쇠틀에 갇혀 일생을 보낸다. 오로지 새끼 낳는 일만 되풀이한다. 몸을 움직일 공간이 없으니, 늘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 사료 먹을 때만 잠시 몸을 일으키고, 그 자리에서 서거나 누운 채로 똥오줌을 싼다. 그렇게 예닐곱 차례 새끼를 낳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도태’된다. 3~4년 정도 살아가는 셈이다. 어미돼지로 선택받지 못한 암퇘지와 수퇘지의 일생은 훨씬 더 짧고 단순하다. 돼지의 평균 자연수명은 15년이다. 8월 말 전라도의 한 돼지공장에서 사흘 동안 일할 기회를 얻었다. 전북 김제의 도축장도 둘러보았다. 기자가 직접 체험한 공장 돼지의 일생을 전한다.

발정 확인되면 이틀 동안 인공수정

교배방의 인공 짝짓기▶ 유난히 전등이 밝았다. 교배방이다. 밝은 빛이 돼지들 짝짓기에 도움이 된단다. 이주노동자 2명이 아침 일찍 인공수정 작업을 시작했다. 쇠틀로 만든 20여 개의 좁은 스톨 안에 어미돼지가 한 마리씩 들어와 있었다. 가만히 서 있는 놈이 여럿이었고, 어떤 놈은 배를 깔고 누워 있었다. 좌우로나 앞뒤로나 한 발짝 옮길 여유 공간이 없었다. 돼지공장에서 태어난 뒤 움직여본 기억이 없는 놈들, 아예 움직일 생각을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작업을 지휘하던 팀장 김씨가 이놈 저놈 어미돼지 등에 올라탔다. 발정한 어미돼지는 등이 돌처럼 단단해진다. 어미들이 늘어선 쇠창살 바깥 통로엔 수퇘지를 풀어놓았다. 암퇘지의 발정을 유도할 놈이었다. 300㎏ 가까운 우람한 체격이었다. 어미돼지의 발정이 확인되면, 이틀 동안 두 차례 인공수정을 한다. 정액 봉지를 손으로 짜서 어미한테 주입기로 밀어넣는 작업이다. 기자도 실습을 해보았다. 어미돼지는 별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김씨는 “전날까지 분만방에서 지내던 어미돼지들이 옮겨온 것”이라고 했다. 어미돼지들은 새끼 젖을 떼고 5일쯤 되면 교배방으로 건너온다. 새끼들한테 젖을 물린 채 종일 드러누워 있기만 하던, 방금 전 분만방에서 보았던 어미돼지의 늘어진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젖을 떼자마자 최대한 빨리 새끼를 가져야 하는 것, 돼지공장 어미돼지들의 숙명이었다.

어미돼지 한 마리가 기우뚱거렸다.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김씨가 어미돼지의 몸 상태를 살피더니 녀석의 등에 ‘도태’라고 스프레이 글자를 썼다. “다리가 안 좋아요. 임신해도 새끼들 무게를 감당 못해요. 처음 여기서 일할 땐 마음이 많이 힘들었어요. 아픈 놈 살려놓았다가 결국 도태시키는 일을 겪잖아요. 이놈들도 정이 들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네요.” ‘도태’ 판정을 받은 돼지는 머지않아 도축장으로 실려간다.

20개의 쇠틀에 들어선 ‘ 동기’들

바로 전날 새끼를 낳은 어미돼지를 이주노동자가 보살피고 있다.


폭 0.75m 임신방의 100일▶ 돼지공장에서 제일 큰 방이다. 가로 20임신개 세로 17개씩, 돼지 1마리가 겨우 들어가는 340개의 쇠틀 스톨이 길고 넓게 방을 가득 채웠다. 희뿌연 전등 아래 이어진 차가운 쇠틀 사이사이로 미동도 없이 드러누운 어미돼지들의 허연 등판이 음산한 느낌을 주었다. 임신방은 어미돼지들이 가장 긴 삶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교배방에서 인공수정을 마치면 분만 일주일 전까지 100일 이상을 이곳에서 지낸다. 같은 가로 줄의 20개 쇠틀에 들어가는 어미돼지들은 ‘임신 동기’들이다. 교배방에서도 같은 날 같은 방에서 인공수정을 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분만할 때도 같은 방으로 옮겨 함께 지낸다. 그런 식으로 교배·임신·분만이라는 어미돼지들의 생산공정이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성숙한 어미돼지는 몸무게가 200㎏ 가까이 나간다. 114~115일의 임신 기간에 40㎏까지 무게가 더 불어난다. 임신방에서 거대한 돼지가 몸을 눕히는 스톨의 크기는 겨우 폭 0.75m, 길이 2.2m이다. 그 좁은 쇠틀 안에서 배가 불러오는 돼지는 눕거나 앉은 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때가 되면 사료를 먹기 위해 일어서고, 앉거나 누운 그 자리에서 쉴 새 없이 똥오줌을 싼다. 그래도 기자가 방문한 농장은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폭이 더 좁은 0.6~0.7m짜리 임신 스톨을 사용하는 돼지공장이 더 많다.

동물보호단체들은 임신 스톨에 100일 이상 갇힌 돼지들 모습에 경악한다. ‘돼지 감금틀’이라 지칭하고 전면 철폐하라고 거칠게 요구한다.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으려면, 임신한 돼지를 4주 이상 스톨에 가둬두면 안 된다.

임신방의 돼지들은 인공수정 25일째에 초음파 진단을 받는다. 그때 임신 실패가 확인된 돼지는 다시 교배방으로 보내진다. 동기들보다 3주 이상 처져서 후배들 무리에 섞인다. 돼지공장에서는 그만큼 생산성 손실로 계산된다.

교배방·임신방·분만방에서 어미돼지가 몸을 눕히는 바닥은 사이사이 똥오줌이 흘러내리도록 얼기설기한 플라스틱 재질로 시공돼 있었다. 바닥 아래로는 똥오줌이 발효된 액비와 함께 바깥으로 흘러나가도록 80㎝ 깊이의 오수 통로가 파여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돼지공장은 바닥 아래 통로로 똥오줌을 자주 빼내주고 있었다. 그래도 악취는 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한 달 이상 똥오줌을 청소하지 않고 묵혀두는 악덕 돼지공장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골마을로 지독한 악취를 내뿜고, 많은 새끼돼지를 병들어 죽게 하고, 불결한 똥가스를 마시면서 자란 돼지고기를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생후 사흘 만에 거세되는 수컷 새끼돼지

분만방의 새끼돼지들▶ 분만 일주일 전, 돼지들이 임신방을 떠나는 날이다. 네팔과 타이에서 온 이주노동자 두 명이 출산을 앞둔 돼지들을 물과 소독약으로 두 차례 샤워를 시켰다. 어미돼지 20마리가 뚱뚱한 몸으로 콘크리트 경사길을 걸어 2층 분만방으로 뒤뚱뒤뚱 올라왔다. 100여 일 전 같은 교배방에서 인공수정을 하고, 임신방의 같은 줄에서 100일 이상 함께 지낸 낯익은 ‘동기’들이다.

한 주 앞선 선배들이 자리잡은 분만방을 열어보았다. 전날(8월20일) 태어난 새끼돼지들이 눈을 감은 듯 뜬 듯 앙증맞은 모습이었다. 어미는 14마리를 건강하게 출산하고 두 마리를 사산했다. 어미돼지의 젖꼭지는 14개다. 하루 만에 새끼돼지들의 젖 빠는 서열이 정해졌다. 힘센 새끼는 어미 머리 가까운 쪽의 좋은 젖꼭지를 차지했다. 약한 새끼는 제 젖꼭지를 물지 못한 채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힘에서 밀린 새끼 둘을 다른 어미돼지한테로 보냈다. 수컷 새끼는 3~4일 만에 거세된다. 그래야 우리 식탁에 올라온 고기에서 노린내가 나지 않는다.

어미들이 길게 옆으로 누운 분만방 한쪽에는 새끼들이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어미돼지는 18~22도의 시원한 곳을 좋아하고, 새끼돼지들은 30도 이상 체온을 유지해줘야 한다.

새끼돼지들은 3~4주 동안 어미 젖을 먹고 6~8㎏ 무게로 자란다. 그때 암컷과 수컷으로 나뉘어 새끼방(자돈사)으로 옮겨진다. 새끼를 떠나보낸 어미돼지는 며칠 뒤 다시 교배방으로 보내진다. 다시 인공수정을 하고, 다시 100여 일 임신방을 거쳐, 다시 분만방으로 돌아오는 순환 공정의 컨베이어벨트를 타게 된다. 어미돼지는 6차례, 많으면 7차례 새끼를 낳고 ‘도태’된다.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퇘지의 짧고 단순한 일생▶ 거세된 수퇘지는 어미 젖을 뗀 뒤 여럿이 함께 뒹구는 새끼방으로 간다. 거기서 75일(30㎏)까지 자라면, 본격적으로 덩치를 키우는 육성방으로 건너가 70㎏까지 몸을 만들고, 마지막 단계인 비육방으로 옮겨 110㎏까지 살을 찌운다. 170~180일 정도, 더위에 지쳐 성장이 더뎌지는 여름철엔 200일까지 살다가 도축장으로 출하된다.

쇠로 된 전살기가 머리에 씌워지자…

농장에서 도축장으로 실려가는 돼지들.


2초 만에 끝나는 도축장▶ 8월23일 김제의 농협목우촌 육가공공장을 찾았다. 하루 2천 마리 돼지를 도축해서 가공하는 공장이다. 도축장 입구를 들어서자 비릿한 피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아우성을 치던 돼지들은 전살(전기로 죽이는 방법) 직전의 마지막 컨베이어벨트에 오르자, 자신의 운명을 짐작한 듯 이내 조용해졌다. 쇠로 된 전살기가 머리에 씌워지자 순식간에 돼지는 의식을 잃었다. 단 2초였다. 그다음 피를 빼고 털을 뽑고 내장을 적출하고 등급을 판정하는 과정이 불과 30여 분 사이에 마무리됐다.

김현식 공장장은 “아직도 일부 남아 있지만 밀폐된 공간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동물을 잡는 방식은 잔인하다”고 했다. 도축장 동물복지 기준은, 도축되는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완전히 기절시킨 뒤 작업을 하도록 요구한다.

도축을 마친 돼지는 영하 28도로 시작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급랭 터널에서 1시간30분 얼려진 뒤 영하 1도의 냉장고에서 14시간을 머물게 된다. 이때 고기의 중심 온도가 2.4도 떨어진다.

도축장과 연결된 가공공장에선 하얀 위생복을 입은 칼잡이들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였다. 하루 전에 도축과 냉동·냉장 과정을 거친 ‘물건’을 손질하는 작업이었다. 공중에 매달린 ‘통고기’를 내린 뒤 부위별로 잘라 포장하는 단계가 길게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이어졌다. 또 하루 뒤엔, 그렇게 잘라낸 일부 고기로 햄과 소시지를 가공하는 공정으로 넘어간다. 공장돼지는 그렇게 식탁에 오르는 ‘단백질 상품’으로 완성된다

기자가 본 ‘공장돼지의 일생’ 이야기를 마친다. 불편한 진실의 현장은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잔인했다. 도축장의 세부 공정은 차마 독자에게 자세히 전하지 못했다. 더 많은 사람이 ‘돼지공장’과 도축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보았으면 하는, 그런 마음을 전한다. 그래야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

김제=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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