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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과 항아리

정부혜 2020. 5. 1. 17:24

[마음 읽기] 봄날과 항아리

 

햇살과 이야기하는 봄날에... 

 


어머니는

때로 내게

시를 보여주시고 들려주신다.

 

시골집에 가면

어머니는

타지에 사는 내게

무엇이든 보여주려고 하신다.

 

당신이

가꾸는 작은 밭에

새로이 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여주거나,

 

동네에 일어난

사소한

일상의 풍경을 들려주시거나,

당신이 살아온

일들에 대해 들려주신다.

 

언젠가 어머니는

당신의

봄날에 대해 들려주셨다.

 

봄날의 새싹들입니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듬해

봄날에

나물을 캐고 뜯으러

밭둑과 언덕에

가신 적이 있었다고 하셨다.

 

정말이지

눈이 부시게

햇살이

고운 봄날 오후였는데

 

막 움트고

푸릇푸릇하게 돋은

풀들을 보는 순간

울음이 쏟아졌다고 하셨다.

 

오후 내내

퍼질러 앉아 우셨다고 하셨다.

봄풀을 보는 순간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봄풀꽃

 

봄은 돌아오고

봄풀은 자라는데

돌아가신 분은

돌아오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도 꽃처럼 돌아올 수 있을까
마음은 담고 비우는 한 개 항아리
마음 항아리에 담긴 것 살펴봐야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졸시

망실(亡失)’을 썼다.

 

"번져라 번져라 病이여" - 문태준 시인

 

“무덤 위에 풀이 돋으니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아요.

오늘은

무덤가에 제비꽃이 피었어요.

 

나뭇가지에서는

산새 소리가

서쪽 하늘로

휘우듬하게 휘어져 나가요.

 

양지의 이마가 더욱 빛나요.

내게 당신은

점점 건조해져요.

무덤 위에 풀이

해마다 새로이 돋고

 

나는

무덤 위에 돋은

당신의

구체적인 몸을

한 바구니 담아가니

 

이제

이 무덤에는

아마도

당신이 없을 거에요”라고

쓴 시였다. 


  그저 福 그 자체★ <찬실이는 복도 많지> 유쾌한 인터뷰 현장♥


며칠 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다가

 

할머니 역으로 나온 분이

주민 센터에서

한글을 배우면서

처음으로 쓴 시를 접하고 나서

 

내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이 얘기가 한 번 더 생각났다.

 

영화에서 할머니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라고 썼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속 글귀

 

봄날의 풍경을 바라보는

그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의 마음에는

옛시간과

옛사람이 현재의 시간,

그리고

현재의 사람들과

늘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했다.

 

할머니와

주인공 찬실이 주고받는 대화도

자꾸 떠올랐다.

 

할머니가

“늙으니까

나는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라고 말하자

 

할머니와

콩나물을 함께 다듬던

찬실이가 여쭈었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어요?”

 

대화는 이어졌다.

“그 대신

오늘 하고 싶었던 일을 애써서 해.”

 

“그럼

오늘 하고 싶었던 일이

콩나물 다듬는 일이었겠네요?”

“알면 됐어.”

 

콩나물 빨리 다듬는 법

 

잊을 수 없는 일과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지만,

 

오늘의 시간에서

오늘의 일을

“애써서”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얘기로 들렸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오늘의

소소한 일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거나,

 

또 스스로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깊이 생각하는 일은

간단하고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그처럼

실천하기는 어렵다. 


  마음의 항아리 채우기 웬 빈항아리~~

 

생각해보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의

항아리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안쪽이 텅 비어서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항아리가 아닌가 싶다.

 

거기에는

시간과 사물과

생명이 담겨 있다.

 

어제의

시간과 행위와

지금의 움직임과

내일의 시간이 담겨 있다.

 

지금의 표정과

여러 감정이 담겨 있다.

 

봄날도 담겨 있어서

진달래꽃과 봄바람과

무논과 새잎이 있다.

그리고

우물처럼 들여다보면

항아리 거기엔

이별한 옛사람이 있다.

 

돌아오지 못하는

옛사람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있다. 
 

시조 시인 김상옥은

‘항아리’라는 시조를 남겼다.

 

  광주 걷기 - 곤지암 도자공원 + 왕실도자기 축제

 

“종일 시내(市內)로 헤갈대다

아자방(亞字房)엘 돌아오면

나도 이미

장 안에 한 개 백자(白瓷)로 앉는다.

때 묻고

얼룩이 밴 그런 항아리로 말이다.

 

비도 바람도

그 희끗대던 진눈깨비도

누누(累累)한 마음도 마저 담았다 비운 둘레

이제는

또 뭘로 채울 건가 돌아도 아니 본다.”

 

아자방은

김상옥 시인이 운영하던

골동품 가게의 이름이었다.

 

시인은

“일호(一毫)의 작위(作爲)도 없는

리 고도(古陶)를

나의 시로서 시 못지않게 사랑한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도자기를 각별하게 아꼈다.

 

그리고 자신을

때가 묻고 얼룩이 스며든

항아리에 견주었다.

 

궂은 비바람과

눈발과 마음이 담긴

항아리에 빗대었다.

 

세파(世事)와

풍상(風霜)을 겪었지만

 

자신의

지금 마음에 담긴 것을

살펴보는 일도

게을리

않겠다는 의지가

이 시조에는 실려 있다. 


  <오후여담>


이 마음의 항아리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차근차근 생각해본다.

 

불안과 자책과

분노와 눈물과 욕심도 담겨 있지만,

 

자애와 절제와

만족과 웃음도 담겨 있다.

 

반짝이는 새소리와

새로운 길과

탁 트인 평원도 담겨 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제의 그림자와

내일의 기대도 담겨 있다.

 

마음의

항아리를 들여다보는 봄날이다. 

 

문태준 시인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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