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국민가수’서 형제 케미
김동현·이솔로몬 인터뷰
“이래 함 해보까?” 카메라 앞에 선 이솔로몬(왼쪽)과 김동현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포즈를 취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조선일보 광화문 스튜디오에 도착한 두 남자가 주황색 종이가 깔린 바닥을 보더니 흠칫했다. “여기 우리 발자국 남아도 되나?” “구두 밑창 좀 닦고 온나!” 표준어를 살짝 비켜간 경상도 억양, 그 진지한 얼굴을 보니 농담이 아니다. 스튜디오에서 여러 사진 촬영을 진행했지만, 바닥 걱정하는 이들은 처음. ‘걱정 말라’고 하니,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보다 그제야 웃음을 터뜨린다. “아, 니 얼굴 보니 내 웃겨서 몬하겠다!”
지난해 대한민국에서 이들보다 더 크게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 있을까. 오디션 끝난 날을 기준 삼자면 이제 갓 2주 된 연예인.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에서 각각 2·3위를 거머쥔 ‘숯불 총각’ 김동현(28)과 ‘집시 총각’ 이솔로몬(29)을 지난달 31일 만났다. 부산과 대구에서 올라와 ‘상경부’에서 형제 같은 케미를 자랑한 이들을, 팬들은 ‘숯로몬(숯총각+솔로몬)’이라 부른다.
‘인기를 실감하느냐’ 물으니 이솔로몬이 먼저 입을 연다. “연락이 진짜 너무 많이 오더라고요. ‘이렇게 안 친했던 사람도 연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하하!” 그러자 김동현이 옆구리를 쿡 찌른다. “로몬이 형 그런 말 나가도 괜찮겠나? 무조건 감사하다 해야지. 나처럼, 하하하!” 2주 차 신인의 유쾌한 ‘군기’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국민가수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김동현(이하 김): “닭갈비 집 아르바이트? 1년 8개월 전 ‘뭐라도 하겠다’며 서울에 왔다. 월세·생활비 내야 하니, 닭갈비 집에서 ‘숯불 총각’으로 일했다. 닭갈비 집 아니라도 어떤 알바든 하고 있을 것이다.”
이솔로몬이 ‘니 진짜 내랑 비슷하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솔로몬(이하 이): “국민가수 나오기 1년 전쯤 서울로 왔다. LH청년전세자금대출 3번 떨어졌다가, 마지막에 급하게 통과가 돼 가능했다. 지난해 오디션 프로 2개에 더 지원했는데, 다 잘 안됐다. 마지막으로 해보자고 한 게 국민가수였다.”
–서로 첫인상은 어땠나.
김: “상경부 대기실에 한 명씩 들어오는데, ‘저 사람 잘할 것 같다’ ‘못할 것 같다’ 느낌이 오더라. 솔로몬 형은 ‘아, 저 사람 광속 탈락이다’ 싶었다. 그런데 첫 무대에서 올 하트(심사위원 만장일치)를 받을 줄이야, 하하! 아직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온전하지 않구나, 다시 한번 겸손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 “안 그래도 동현이가 대기실에서 살가운 미어캣처럼 사람들을 계속 보더라(웃음). 동현이는 경연 전 목 풀 때 소리를 들어보니, 귀에 확 꽂히는 톤이라 잘되겠다 싶었다.”
–서로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김: “로몬이 형은 가사 전달 능력이 탁월하다. 글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노래를 대화하면서 말하듯이 한다.”
이: “남자 음역을 세 개로 나눈다고 하면, 3섹션이 제일 고음역대다. 대개 1·2섹션까지는 잘 나오지만, 그 위로는 소리가 예쁘게 나기가 어렵다. 그런데 동현이는 2섹션부터 3섹션까지 소리가 너무나 예쁘게 이어져 나온다.”
두 사람이 국민가수 경연에서 부활의 ‘사랑이란 건’을 듀엣으로 부르는 장면. /TV조선
–서로 몇 등 정도 할 거라 예상했나.
김: “솔로몬 형은 ‘집시 여인’ ‘러브 포엠’ 등 초반부터 임팩트가 엄청 강했다. 에너지도 너무 좋아서 우승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 “동현이는 노래 부를 때 기복이 없다. 오디션에선 안정적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낸다. 상위권으로 마칠 거란 확신이 있었다.”
–최종 우승은 박창근이지만 심사위원 점수는 김동현이, 대국민 응원 점수는 이솔로몬이 가장 높았다.
이: “나는 창근이 형이 1등 해서 정말 좋았다. 1등에 심취해서 오만해질 수도 있고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다. 그런 계기가 깔끔하게 커트돼 감사하다.”
김: “1등 발표되고 솔로몬 형이랑 포옹하는데 마음이 정말 편하더라. 1등은 상금을 주고 2·3등은 없다. 우리 둘만 놓고 봤을 때 누구는 1등이고, 한 사람은 아니었다면 괜히 미안했을 것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봤을 때도, 창근이 형님만 한 적임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창근이 형 노래는 직관하면 정말 충격의 도가니다. 나도 무대 장악력으로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창근이 형 노래를 들으면 ‘난 무슨 생각으로 노래하는 거지?’ 싶다. 관록이랄까. 음악에 담아온 50년 가까운 인생을 20~30년 인생이 흉내낼 수 없는 것 같다. 아마 국제 대회였다면 내가 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영어 쓰잖아, 하하!”
–가장 아쉬웠던 무대와 좋았던 무대는?
이: “최고의 무대는 결승에서 불렀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 인생을 녹여낸 노래였다. 아쉬웠던 무대는 본선 1차에서 불렀던 ‘오래전 그날’. 노래 시작 직전에 감정이 흐트러져서 다시 잡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김: “준결승전에서 부른 ‘말리꽃’. 김범수 마스터가 ‘완벽한 무대’였다는 평가를 해주셔서 기억에 남는다. 아쉬운 무대는 아이유의 ‘러브 포엠’. 상경부 팀미션이라 내 모습을 제대로 보여 드리지 못했다.”
–노래 잘하는 비결이 있다면.
김: 노래를 시작하고 나서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끈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다. 사람들은 연습실을 잡아야 연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연습실에 가서 2시간 노래를 했다는 건 이 고민을 행동으로 옮긴 것뿐이다. 모든 순간 내 생각은 노래로 가득 차 있다.”
이: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도달하지) 못한다고 한다. 미쳐 있다는 건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 생각이 언제나 한 지점에 모여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게 정말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 심장이 뛰지 못하는 일은 결국 내 일이 아니더라.”
'내일은 국민가수' 2위에 오른 김동현.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김동현은 대학 실용음악과 진학에 실패하고,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와 기획사에 들어간다. 가수 데뷔를 노렸지만, 그의 표현에 의하면 ‘잘려서’ 나왔다. 다시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와 친구들과 밴드 ‘아띠’를 결성해 부산 광안리·영도·서면 거리 등을 누비며 버스킹 활동을 했다. 그러다 군 제대 후 ‘뭐라도 해보자’며 다시 서울로 왔다.
–부모님이 반대는 안 하셨나.
김: “엄청 하셨다. 고2 때 밴드부 보컬에 합격했는데, 집에선 공부만 해도 바쁠 시기에 그걸 왜 하느냐고 했다. 그러다 연말 축제에 어머니랑 누나를 불렀다. 아버지는 너무 싫어하시니 아예 부르지도 못했고(웃음). 어머니가 내 노래하는 모습과, 이걸 좋아해 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뭔가를 느끼셨던 것 같다. 고2 겨울방학 때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해주셨다.”
–국민가수 결승전 때는 아버지도 오셨던데.
김: “그 무대가 아버지가 본 내 첫 공연이다. 아버지와는 연락도 잘 안 했는데 결승 끝나고 카톡이 왔더라. 고생 많았다고, 오히려 더 잘된 결과라고. 우승했어도 좋았겠지만, 앞으로 네가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 아니겠느냐고.”
–본선에서 같은 가수(신용재)의 노래를 연달아 불러 혹평받았다.
김: “신용재의 ‘가수가 된 이유’를 먼저 불렀지만, 나중에 부른 ‘오늘’을 1라운드 때부터 부르고 싶었다. 가사가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그 곡을 선택했는데, 듣는 사람은 ‘신용재 카피인가’ 하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그래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아쉬움은 없었다. 다만 팀 미션에서 내가 책임진 부분이 컸는데, 이로 인해 팀원들 당락이 결정돼 그게 너무 슬펐다.”
'내일은 국민가수' 3위에 오른 이솔로몬.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이솔로몬 역시 스무 살 이후 삶의 궤적이 김동현과 흡사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획사에 들어갔으나 곧 나왔다. 이후 고향으로 내려갔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국민가수에 참가했다.
–최근 온라인 라이브 방송에서 공개된 영어 실력이 화제다. 영국 유학파란 설도 있더라.
이: “안 그래도 깜짝 놀랐다(웃음). 영어는 독학으로 했다. 20대 초반, 대학도 안 가고 공부도 안 하고 노래만 좀 했던 그 시점에 증명해 내고 싶은 게 있었다. 아무것도 없지만, 강한 의지를 가지고, 내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이걸 서른두 살에 TED(세계적인 온라인 강연 플랫폼)에 나가 말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TED에 나가 강연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을 만들어야 했다.”
–2016년 문예지에 등단한 시인이다.
이: “20대 초반 가수를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가 있었다. 방송 관계자들, 연예인에 대한 구설이나 소문 같은 걸 들으면서 내가 뛰어들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둘째로 하고 싶었던 일이 시 쓰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작가들이 책을 얼마나 출판했는지 보니, 30~50권 정도 냈더라. 그 비슷한 연배까지 나도 양질의 책을 써내면 밥은 먹고 살겠지, 하는 생각에 미친 듯이 글을 썼다.”
–다시 가수에 도전한 이유는?
이: “글을 쓰면서 나를 지키는 훈련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사람이 환경의 영향도 받지만, 스스로 굳은 심지만 있다면 어디에 내놓아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 지금은 20대 초반처럼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킬 자신이 생겼다.”
–가수와 글 쓰는 것 중 어느 직업을 더 앞에 두고 싶나.
이: “그냥 예술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래하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 모두 내 마음속 감정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물어보는 작업이다.”
옆에서 김동현이 ‘우문현답’을 했다. “음유시인 하면 되겠다. 음이 흐르는 시인!”
‘둘이 어떻게 친해졌느냐’는 질문에 김동현(왼쪽)은 “내가 일방적으로 들이댔다”며 웃었다. “로몬이 형한테 마성의 매력이 뿜어져 나오더라고요!” 이솔로몬은 “내 인생이 버거우니 사람을 마음에 잘 안 들이려고 하는데, 동현이는 챙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국민가수 전에 여러 오디션에 도전했다가 떨어졌다.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나.
김: “한 번도. 어머니가 내게 늘 해주시던 말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 고맙다’였다. 건강하게만 지낸다면 뭘 해도 먹고는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좋아하는 일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 부족하게 살아도 마음만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즐거움에 취해 살았다.”
이: “나는 매일 깃발처럼 흔들렸다. 그만하고 싶다는 그 생각을 안 하려고, 하루 목표치를 정해놓고 최선을 다해서 해냈다. 시 쓰고, 성경 읽고, 운동하고, 알바가 구해지면 닥치는 대로 했다. 그래도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올 때가 있었다. 그러면 우울한 상태로 글을 썼다. 지난해 2월 마지막으로 쓴 글이 ‘나는 지금도 내가 가는 이 길을 의심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버텨낸 힘은 뭘까.
이: “원하는 건 후회가 남지 않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비관적인 상황에서 나도 해냈고, 당신도 해낼 수 있다는 걸.”
김: “이런 가치관이 형과 잘 맞는 것 같다. 둘이 같이 있으면 해 뜰 때까지 이야기한다.”
–같은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김: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대로 따라서 살아간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가야 하는 삶은 늦고 빠르고가 없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시간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사실 하고 싶은 것에 도전 못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 “나는 이런 청춘들의 의지와 용기를 꺾는 어른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웃음). 어른들이 ‘서른까지는 괜찮지만 이제 정신 차려야지’ 한다. 내가 한 행동은 정신을 못 차리고 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수많은 변화와 혁신은 누군가의 용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인생을 더 살아보셨다고 해서, 용기를 갖고 살아가는 청년들의 꿈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들이 도전 못 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불안한 말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설움이 좀 많다, 하하!”
–2022년 새해 목표가 있다면.
이: “나는 늘 한 해 마지막에, 그해 목표가 얼마나 달성됐는지 보고서를 쓰고 그에 맞춰 새해 계획을 세운다. 지난해 국민가수 준비 시작했을 때부터는 국민가수만 잘 마치는 것으로 목표를 중간에 바꿨다. 너무 과하게 목표를 잡고 이를 달성하려다 보면 그해에는 꼭 몸이 아프더라. 오늘(12월 31일) 가서 한 해를 정산하고, 건강하게 매달 지킬 수 있는 목표를 세울 계획이다.”
이솔로몬의 ‘한 해 보고서’에 김동현이 “나는 목표가 없는 사람”이라며 살짝 당황했다.
김: “우리가 이렇게 상반돼서 재밌는 것 같다(웃음). 나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대로 걸어가겠다는 생각이다. 오디션이 전환점이 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의 모든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일 뿐. 앞으로 만날 수많은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새해 목표는 달라도 이날 인터뷰가 끝난 두 사람의 목적지는 같았다. 연습실. 한 해의 마지막 밤도 이들은 연습실에서 보낸다고 했다.
김동현·이솔로몬 인터뷰
조선일보 광화문 스튜디오에 도착한 두 남자가 주황색 종이가 깔린 바닥을 보더니 흠칫했다. “여기 우리 발자국 남아도 되나?” “구두 밑창 좀 닦고 온나!” 표준어를 살짝 비켜간 경상도 억양, 그 진지한 얼굴을 보니 농담이 아니다. 스튜디오에서 여러 사진 촬영을 진행했지만, 바닥 걱정하는 이들은 처음. ‘걱정 말라’고 하니,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보다 그제야 웃음을 터뜨린다. “아, 니 얼굴 보니 내 웃겨서 몬하겠다!”
지난해 대한민국에서 이들보다 더 크게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 있을까. 오디션 끝난 날을 기준 삼자면 이제 갓 2주 된 연예인. TV조선 ‘내일은 국민가수’에서 각각 2·3위를 거머쥔 ‘숯불 총각’ 김동현(28)과 ‘집시 총각’ 이솔로몬(29)을 지난달 31일 만났다. 부산과 대구에서 올라와 ‘상경부’에서 형제 같은 케미를 자랑한 이들을, 팬들은 ‘숯로몬(숯총각+솔로몬)’이라 부른다.
‘인기를 실감하느냐’ 물으니 이솔로몬이 먼저 입을 연다. “연락이 진짜 너무 많이 오더라고요. ‘이렇게 안 친했던 사람도 연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하하!” 그러자 김동현이 옆구리를 쿡 찌른다. “로몬이 형 그런 말 나가도 괜찮겠나? 무조건 감사하다 해야지. 나처럼, 하하하!” 2주 차 신인의 유쾌한 ‘군기’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국민가수 아니라면? 계속 알바했겠죠!
–국민가수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김동현(이하 김): “닭갈비 집 아르바이트? 1년 8개월 전 ‘뭐라도 하겠다’며 서울에 왔다. 월세·생활비 내야 하니, 닭갈비 집에서 ‘숯불 총각’으로 일했다. 닭갈비 집 아니라도 어떤 알바든 하고 있을 것이다.”
이솔로몬이 ‘니 진짜 내랑 비슷하다’며 맞장구를 쳤다.
이솔로몬(이하 이): “국민가수 나오기 1년 전쯤 서울로 왔다. LH청년전세자금대출 3번 떨어졌다가, 마지막에 급하게 통과가 돼 가능했다. 지난해 오디션 프로 2개에 더 지원했는데, 다 잘 안됐다. 마지막으로 해보자고 한 게 국민가수였다.”
–서로 첫인상은 어땠나.
김: “상경부 대기실에 한 명씩 들어오는데, ‘저 사람 잘할 것 같다’ ‘못할 것 같다’ 느낌이 오더라. 솔로몬 형은 ‘아, 저 사람 광속 탈락이다’ 싶었다. 그런데 첫 무대에서 올 하트(심사위원 만장일치)를 받을 줄이야, 하하! 아직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온전하지 않구나, 다시 한번 겸손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 “안 그래도 동현이가 대기실에서 살가운 미어캣처럼 사람들을 계속 보더라(웃음). 동현이는 경연 전 목 풀 때 소리를 들어보니, 귀에 확 꽂히는 톤이라 잘되겠다 싶었다.”
–서로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김: “로몬이 형은 가사 전달 능력이 탁월하다. 글 쓰는 사람이라 그런지, 노래를 대화하면서 말하듯이 한다.”
이: “남자 음역을 세 개로 나눈다고 하면, 3섹션이 제일 고음역대다. 대개 1·2섹션까지는 잘 나오지만, 그 위로는 소리가 예쁘게 나기가 어렵다. 그런데 동현이는 2섹션부터 3섹션까지 소리가 너무나 예쁘게 이어져 나온다.”
–서로 몇 등 정도 할 거라 예상했나.
김: “솔로몬 형은 ‘집시 여인’ ‘러브 포엠’ 등 초반부터 임팩트가 엄청 강했다. 에너지도 너무 좋아서 우승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 “동현이는 노래 부를 때 기복이 없다. 오디션에선 안정적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낸다. 상위권으로 마칠 거란 확신이 있었다.”
국제 대회였다면, 영어 잘하는 내가 1등 했을지도
–최종 우승은 박창근이지만 심사위원 점수는 김동현이, 대국민 응원 점수는 이솔로몬이 가장 높았다.
이: “나는 창근이 형이 1등 해서 정말 좋았다. 1등에 심취해서 오만해질 수도 있고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다. 그런 계기가 깔끔하게 커트돼 감사하다.”
김: “1등 발표되고 솔로몬 형이랑 포옹하는데 마음이 정말 편하더라. 1등은 상금을 주고 2·3등은 없다. 우리 둘만 놓고 봤을 때 누구는 1등이고, 한 사람은 아니었다면 괜히 미안했을 것이다. 시청자 입장에서 봤을 때도, 창근이 형님만 한 적임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창근이 형 노래는 직관하면 정말 충격의 도가니다. 나도 무대 장악력으로는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창근이 형 노래를 들으면 ‘난 무슨 생각으로 노래하는 거지?’ 싶다. 관록이랄까. 음악에 담아온 50년 가까운 인생을 20~30년 인생이 흉내낼 수 없는 것 같다. 아마 국제 대회였다면 내가 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영어 쓰잖아, 하하!”
–가장 아쉬웠던 무대와 좋았던 무대는?
이: “최고의 무대는 결승에서 불렀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 인생을 녹여낸 노래였다. 아쉬웠던 무대는 본선 1차에서 불렀던 ‘오래전 그날’. 노래 시작 직전에 감정이 흐트러져서 다시 잡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김: “준결승전에서 부른 ‘말리꽃’. 김범수 마스터가 ‘완벽한 무대’였다는 평가를 해주셔서 기억에 남는다. 아쉬운 무대는 아이유의 ‘러브 포엠’. 상경부 팀미션이라 내 모습을 제대로 보여 드리지 못했다.”
–노래 잘하는 비결이 있다면.
김: 노래를 시작하고 나서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끈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다. 사람들은 연습실을 잡아야 연습이라고 생각하지만, 연습실에 가서 2시간 노래를 했다는 건 이 고민을 행동으로 옮긴 것뿐이다. 모든 순간 내 생각은 노래로 가득 차 있다.”
이: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도달하지) 못한다고 한다. 미쳐 있다는 건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 생각이 언제나 한 지점에 모여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게 정말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 심장이 뛰지 못하는 일은 결국 내 일이 아니더라.”
국민가수, 아버지가 본 내 첫 공연
김동현은 대학 실용음악과 진학에 실패하고,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와 기획사에 들어간다. 가수 데뷔를 노렸지만, 그의 표현에 의하면 ‘잘려서’ 나왔다. 다시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와 친구들과 밴드 ‘아띠’를 결성해 부산 광안리·영도·서면 거리 등을 누비며 버스킹 활동을 했다. 그러다 군 제대 후 ‘뭐라도 해보자’며 다시 서울로 왔다.
–부모님이 반대는 안 하셨나.
김: “엄청 하셨다. 고2 때 밴드부 보컬에 합격했는데, 집에선 공부만 해도 바쁠 시기에 그걸 왜 하느냐고 했다. 그러다 연말 축제에 어머니랑 누나를 불렀다. 아버지는 너무 싫어하시니 아예 부르지도 못했고(웃음). 어머니가 내 노래하는 모습과, 이걸 좋아해 주는 친구들을 보면서 뭔가를 느끼셨던 것 같다. 고2 겨울방학 때 실용음악학원에 등록해주셨다.”
–국민가수 결승전 때는 아버지도 오셨던데.
김: “그 무대가 아버지가 본 내 첫 공연이다. 아버지와는 연락도 잘 안 했는데 결승 끝나고 카톡이 왔더라. 고생 많았다고, 오히려 더 잘된 결과라고. 우승했어도 좋았겠지만, 앞으로 네가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 것 아니겠느냐고.”
–본선에서 같은 가수(신용재)의 노래를 연달아 불러 혹평받았다.
김: “신용재의 ‘가수가 된 이유’를 먼저 불렀지만, 나중에 부른 ‘오늘’을 1라운드 때부터 부르고 싶었다. 가사가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그 곡을 선택했는데, 듣는 사람은 ‘신용재 카피인가’ 하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그래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아쉬움은 없었다. 다만 팀 미션에서 내가 책임진 부분이 컸는데, 이로 인해 팀원들 당락이 결정돼 그게 너무 슬펐다.”
영국 유학파? TED 가려 준비했다
이솔로몬 역시 스무 살 이후 삶의 궤적이 김동현과 흡사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획사에 들어갔으나 곧 나왔다. 이후 고향으로 내려갔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국민가수에 참가했다.
–최근 온라인 라이브 방송에서 공개된 영어 실력이 화제다. 영국 유학파란 설도 있더라.
이: “안 그래도 깜짝 놀랐다(웃음). 영어는 독학으로 했다. 20대 초반, 대학도 안 가고 공부도 안 하고 노래만 좀 했던 그 시점에 증명해 내고 싶은 게 있었다. 아무것도 없지만, 강한 의지를 가지고, 내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이걸 서른두 살에 TED(세계적인 온라인 강연 플랫폼)에 나가 말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TED에 나가 강연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을 만들어야 했다.”
–2016년 문예지에 등단한 시인이다.
이: “20대 초반 가수를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가 있었다. 방송 관계자들, 연예인에 대한 구설이나 소문 같은 걸 들으면서 내가 뛰어들 길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둘째로 하고 싶었던 일이 시 쓰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작가들이 책을 얼마나 출판했는지 보니, 30~50권 정도 냈더라. 그 비슷한 연배까지 나도 양질의 책을 써내면 밥은 먹고 살겠지, 하는 생각에 미친 듯이 글을 썼다.”
–다시 가수에 도전한 이유는?
이: “글을 쓰면서 나를 지키는 훈련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사람이 환경의 영향도 받지만, 스스로 굳은 심지만 있다면 어디에 내놓아도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다. 지금은 20대 초반처럼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킬 자신이 생겼다.”
–가수와 글 쓰는 것 중 어느 직업을 더 앞에 두고 싶나.
이: “그냥 예술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노래하는 것과 글을 쓴다는 것 모두 내 마음속 감정을 온전히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물어보는 작업이다.”
옆에서 김동현이 ‘우문현답’을 했다. “음유시인 하면 되겠다. 음이 흐르는 시인!”
청춘들, 자신만의 이야기 쓰길
–국민가수 전에 여러 오디션에 도전했다가 떨어졌다.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나.
김: “한 번도. 어머니가 내게 늘 해주시던 말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 고맙다’였다. 건강하게만 지낸다면 뭘 해도 먹고는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좋아하는 일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고. 부족하게 살아도 마음만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는 즐거움에 취해 살았다.”
이: “나는 매일 깃발처럼 흔들렸다. 그만하고 싶다는 그 생각을 안 하려고, 하루 목표치를 정해놓고 최선을 다해서 해냈다. 시 쓰고, 성경 읽고, 운동하고, 알바가 구해지면 닥치는 대로 했다. 그래도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올 때가 있었다. 그러면 우울한 상태로 글을 썼다. 지난해 2월 마지막으로 쓴 글이 ‘나는 지금도 내가 가는 이 길을 의심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버텨낸 힘은 뭘까.
이: “원하는 건 후회가 남지 않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비관적인 상황에서 나도 해냈고, 당신도 해낼 수 있다는 걸.”
김: “이런 가치관이 형과 잘 맞는 것 같다. 둘이 같이 있으면 해 뜰 때까지 이야기한다.”
–같은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김: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대로 따라서 살아간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가야 하는 삶은 늦고 빠르고가 없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시간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사실 하고 싶은 것에 도전 못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 “나는 이런 청춘들의 의지와 용기를 꺾는 어른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웃음). 어른들이 ‘서른까지는 괜찮지만 이제 정신 차려야지’ 한다. 내가 한 행동은 정신을 못 차리고 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수많은 변화와 혁신은 누군가의 용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인생을 더 살아보셨다고 해서, 용기를 갖고 살아가는 청년들의 꿈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들이 도전 못 하는 건 의지가 약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불안한 말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설움이 좀 많다, 하하!”
–2022년 새해 목표가 있다면.
이: “나는 늘 한 해 마지막에, 그해 목표가 얼마나 달성됐는지 보고서를 쓰고 그에 맞춰 새해 계획을 세운다. 지난해 국민가수 준비 시작했을 때부터는 국민가수만 잘 마치는 것으로 목표를 중간에 바꿨다. 너무 과하게 목표를 잡고 이를 달성하려다 보면 그해에는 꼭 몸이 아프더라. 오늘(12월 31일) 가서 한 해를 정산하고, 건강하게 매달 지킬 수 있는 목표를 세울 계획이다.”
이솔로몬의 ‘한 해 보고서’에 김동현이 “나는 목표가 없는 사람”이라며 살짝 당황했다.
김: “우리가 이렇게 상반돼서 재밌는 것 같다(웃음). 나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 그대로 걸어가겠다는 생각이다. 오디션이 전환점이 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의 모든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일 뿐. 앞으로 만날 수많은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새해 목표는 달라도 이날 인터뷰가 끝난 두 사람의 목적지는 같았다. 연습실. 한 해의 마지막 밤도 이들은 연습실에서 보낸다고 했다.
남정미 기자 nj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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