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 이기철
초승달 귀고리를 단 복사꽃이 울타리 아래 피고 메밀껍질
만한 검정 운동화가 뜨락에 놓여 있으면 그만 그 자리에 돌멩
이처럼 눌러 앉고 싶었다 나의 봄은 늘 그렇게 왔다
버드나무 가지에 둥지를 짓는 새들이 아직 안 온 다른 새를
기다리는 눈빛을 보고 저것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빛이
라고 생각할 때는 눈시울이 먼저 젖었다 그런 날은 마음이 텅
스텐처럼 반짝였다
패랭이꽃이 소꿉 상처럼 핀 마당귀에 가조흰 줄나비가 날
아다녔다 그 환한 분홍 뒤에도 어둠은 잿빛으로 오고 산그늘
이 조금만 쉬어가자고 조르는, 솥 안에 자져진 쌀밥 같은 오월
은 복사꽃만 무진장 피워놓고 갔다 나의 봄은 늘 그렇게 그렇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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