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의 압박… 학부모·아이들 "겨울방학이 무섭다"
세계일보 | 기사입력 2008.11.11 20:34 | 최종수정 2008.11.11 21:59
◇11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영어학원에 학부모와 학생이 수강을 상담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전신 인턴기자 |
어김없이 경제적 여유가 없는 부모들이 자녀 앞에 고개 숙여야 하는 계절이 찾아왔다. 초등학교나 중학생은 물론 유치원생 자녀를 둔 부모까지 영어 사교육 부담으로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벌써부터 주변에서는 "이웃 아무개네는 미국으로 갔다", "같은 반 누구네는 강남 영어몰입 캠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들린다. 마음 같아서는 자기 자녀도 그럴싸한 캠프에 보내고 싶지만 빠듯한 살림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불황에도 영어캠프는 호황=10일 서울시내 각 대학교에 따르면 이달 초 접수를 시작한 겨울방학 영어몰입 캠프에 학부모들이 대거 몰려 이미 상당수 프로그램이 정원을 채웠다.
한양대가 지난달 27일부터 접수한 영어캠프는 2주 만에 마감했다. 명지대도 지난 3일 참가신청을 받기 시작해 2주 만에 절반 이상의 프로그램 접수가 끝났다. 가톨릭대와 경기대 등 영어캠프를 운영하는 대학 관계자들도 "수강 희망자가 몰려 곧 접수 마감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이 주관하는 영어캠프가 인기를 끄는 건 내용은 알차고 수강료는 사설 어학원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대학 영어캠프는 보통 4주 일정에 주 3회 수업으로 75만∼90만원을 받는데, 유명 어학원에서는 3주 수업에 200만∼260만원까지 받는다.
대학 영어캠프에 자녀를 보내는 학부모들도 흡족한 건 아니다. '미국 동부 최고 사립학교에서 수업 기회를 체험한다'거나 '하버드 등 외국 명문대 출신 석·박사와 함께 견문을 넓힐 수 있다'는 해외 캠프 광고에 여전히 귀가 솔깃하다.
강남지역 주부 중에는 자녀들이 그동안 배운 영어를 미국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써보도록 방학 때 자녀를 데려가 다양한 현지 커뮤니티 캠프에 보내는 이들도 많다. 특히 오는 17일부터 미국 비자면제 제도가 시행되면 '미국행 치맛바람'은 더욱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초등학교 3, 4학년 자녀를 둔 주부 오모(39·경기 안양)씨는 "두 애를 미국이나 캐나다로 보내려면 500만원 이상 든다는데 엄두를 못내겠다"고 말했다.
아이가 유치원생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서울 홍제동에 사는 주부 A씨는 "옆집 아이는 영어유치원을 보낸다는데 한 달에 100만원이라고 한다"며 "남편은 학교 방과후 수업을 말하는데 그런 수업 찾기도 힘들고 돈도 없어 아르바이트라도 나서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아이들도 "방학은 힘들어"=전문가들은 이른 나이 어린이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영어에 노출시킬 경우 어학에 대한 호기심을 잃게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유명 어학원이나 영어유치원에서는 단기 어학능력 향상을 목표로 미국 교과서를 활용해 집중적인 영어몰입교육을 하고 있다.
40대 중반 회사원 B씨는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서울 유명 사립대 영어캠프에 보냈다가 실패한 사례다. 아이 실력이 어느 정도 된다고 믿었는데 다른 친구들 실력이 워낙 좋아 충격을 받은 것. A씨는 "아이가 영어 공부하기 싫다며 담을 쌓아 안 보내느니만 못했다"고 말했다.
상명대 박거용 영어교육과 교수는 "어린 학생들이 외국의 교과서로 공부하려면 적잖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결국 다른 과목에 소홀하기 마련"이라며 "방학 영어캠프 등 단기 집중 영어학습은 영어에 관심 있는 아이에게도 호기심 충족 외 효과를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외 영어캠프도 우후죽순 격으로 난립한 캠프 유치업체로 인해 적잖은 문제를 낳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어학연수와 해외 영어캠프와 관련한 문제로 소비자 상담을 신청한 건수는 지난해 196건을 훌쩍 뛰어넘어 올해 8월 현재 227건에 이른다.
서울대 이병민 영어교육과 교수는 "영어교육 열풍에 편승해 단기 어학능력 향상만을 바랄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가 외국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홍·이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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