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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신종플루 의심환자 어디로 가나요?

정부혜 2009. 9. 3. 17:05

[사회]신종플루 의심환자 어디로 가나요?

위클리경향 | 입력 2009.09.03 15:02

 
ㆍ보건소는 고위험군만 검사, 일반병원은 꺼려 진료처 찾아 전전

↑ 종로구 보건소에 설치된 상담소. <임석빈 인턴기자>

↑ 8월 27일 서울시청에 마련된 임시상담소에서 한 노인이 상담하고 있다. <임석빈 인턴기자>

↑ 신종플루의 학교내 집단감염 예방을 위해 8월27일 서울 용산구 신용산초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체온을 재고 있다. <남호진 기자>

말 그대로 난리다. 전국 초·중·고 가운데 46곳이 임시휴교를 하거나 개학을 연기했다. 개학한 학교들에서는 등굣길마다 학생들의 발열 상태를 일일이 확인한다. 회사들은 비상체제에 들어가 신종플루 예방법을 홍보하고 사원 관리에 나섰다. 온도계, 방역용 마스크, 손 세정제 등 신종플루 예방과 관련한 제품은 동났다. 보건 당국은 신종플루 백신 확보를 위해 부랴부랴 국외로 사절단을 파견하는 등 대책 마련에 고심이다. 이런 난리속에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환자 떠밀기'다. 신종플루를 염려하는 이들(의심환자)이 보건소와 병원 사이에서 갈 곳을 잃었다. 보건소와 병원 모두 환자를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사망자도 3명으로 늘었지만 병원들의 반응은 구태의연한 것이다.

속수무책…불안감 확산

서울시 종로구 보건소. 입구에는 신종플루 상담소가 설치돼 있다. 상담소를 찾은 박우원씨(68)가 신종플루 진료를 요구했다. 마스크를 쓴 여직원이 다가와 체온을 쟀다. 36.9도. "37.8도가 넘어야 검사가 가능하다"는 직원의 말에 박씨는 "며칠 동안 열이 있다"면서 "진료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8월21일부터 지침이 변경돼 보건소는 신종플루 증상이 있으며 고위험군(65세 이상 노인, 59개월 이하 소아, 임신부, 만성질환자)에 속하는 사람만 검사를 실시한다는 직원과 그래도 진료를 받고 싶다는 박씨 사이에 작은 승강이가 벌어졌다. 승강이가 계속되자 다른 담당자가 나타나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박씨를 데리고 진료실로 향했다. 승강이를 한 여직원은 "신종플루 진료에 대해 주민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아 일어난 것 같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종로구 보건소 보건위생과 담당자는 "지침이 바뀌어서 더 이상 의심환자를 대상으로 진료하지 않는다"면서 "직접 관련 안내문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첫 신종플루 감염 추정환자가 발견된 지 4개월. 정부의 대책은 '속수무책과 허둥지둥'이라는 세간의 비아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8월28일까지 국내에서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는 3명이다. 이들의 직접적인 사인은 신종플루 합병증인 폐렴으로 인한 패혈증과 폐부종 등이다. 이 가운데 8월15일과 16일에 사망한 이들의 치료 과정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첫 사망자의 경우 8월8일 보건소를 거쳐 의료기관 응급실을 찾아 폐렴 진단을 받았지만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가 투여된 시점은 나흘이 지난 12일이었다. 신종플루 확진 여부는 사망 하루 전인 14일에서야 확인됐다. 두 번째 사망자 역시 병원을 찾아 입원한지 엿새가 지나서 타미플루를 투여 받았다. 신종플루는 감염된 지 48시간 안에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면 대부분 완치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두 사망자 모두 발병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았으면 사망에까지 이르지 않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초기 대응 부실과 함께 보건당국이 일선 병원에 내린 항바이러스제 투약에 대한 지침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일었다. 감염자 수도 급격하게 늘었다. 7월10일 확진환자는 367명이었지만 한 달이 지난 8월10일엔 1810명까지 늘었다. 8월20일에는 하루 258명이 새로 양성반응을 보이며 '대유행'조짐을 보이고 있다.

병원으로 가라는 보건소

초기 대응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감염자가 급증하자 보건당국은 신종플루에 대한 새로운 지침을 내놓았다.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는 "신종플루가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단계는 아니지만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됨에 따라 폐렴 등 중증 환자 및 사망자 발생을 방지하고 항바이러스제 투약이 필요한 환자가 적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투약대상 및 투약절차를 변경한다"고 밝혔다.

새로운 지침의 핵심은 타미플루의 투약 대상 및 절차 변경이다. 기존에는 해외여행자 및 확진환자와의 접촉자를 보건소를 통해 타미플루를 투여했다.

그러나 새로운 지침은 합병증 우려 고위험군 대상으로 하여 민간 의료기관과 거점약국을 중심으로 타미플루를 투여하도록 변경됐다. 이로 인해 보건소와 정부가 지정한 전국 455개 거점병원에서 신종플루 진료와 의사의 판단에 따른 타미플루 투약이 가능하다. 또 일반병원에서도 의사의 판단에 따른 처방전을 발급받아 정부가 지정한 전국 567개 거점약국을 통해 타미플루를 구할 수 있다. 즉 타미플루 투여 대상 확대와 투약루트 다양화로 신속하게 타미플루를 보급하고 신종플루 확산을 방지하겠다는 의미다.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보건소를 중심으로 예방 위주의 차원이었다면 이제는 민간 의료기관을 통한 치료 차원"이라면서 "확산 방지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8월27일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통해 신종플루 대유행시 최대 2만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공개해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가 확산됐다. 이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신종플루 입원환자 10만~15만명, 사망자 1만~2만명으로 추정했다. 이는 적극적인 방역 대책을 펼쳤을 때의 예상 수치이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 "영국이나 호주 등 외국에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나온 수치를 우리나라에 단순 적용해 계산한 것"이라면서 "현실성이 낮은 시나리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신종플루에 대한 불안감은 이미 널리 퍼져 있다.

권재혁씨(35)는 아들과 함께 보건소를 찾았다. 권씨 가족은 인도와 네팔 등지를 한 달가량 여행하고 일주일 전에 귀국했다. 아들 권율군(8)이 감기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고열에 기침과 인후통. 뉴스에서 보던 신종플루 증상과 흡사했다. 서둘러 인근 소아과를 찾았지만 "신종플루인지 검사해 달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일반병원에서 신종플루 환자를 꺼려한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권씨는 "증상을 보면 의사가 먼저 신종플루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다"면서 "꺼려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단순감기 처방을 받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보건소를 찾았다. 보건소에서는 단순히 열만 잴 뿐 아무런 진료를 해 주지 않았다. 거점병원으로 가라는 말만 들었다. 권씨는 "가까운 보건소를 찾으라고 뉴스를 보고 왔지만 이런 대우를 받을 줄 몰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권씨는 계속 기침을 하는 아들의 손을 잡고 거점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환자가)3000명도 넘었다면 크게 확산된 거잖아요. 그런데 보건소는 무작정 큰 병원으로만 가라고 하는 게 어이가 없네요. 저처럼 남한테 피해될까봐 말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크게 퍼졌는데 보건소는 뭐하는 건가요?"

보건소에 대한 의심환자들의 불만에 대해 수도권의 한 보건소 관계자 김 모씨(35)는 "보건소는 치료를 목적으로 존재하는 곳이 아니지 않느냐"면서 "우리(보건소) 선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보건소는 신종플루 확진 검사를 위한 장비도 갖추지 못했고, 환자를 입원시킬 병실이 따고 있지 않아서 진료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의심환자들은 보건소에서 직접 타미플루를 투여받길 원한다. 그는 "업무량이 많아서 개별적인 의심환자를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진료를 목적으로 찾는 사람은 모두 민간병원으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를 꺼리는 병원

"환자가 오면 받아들이긴 하지만 달갑지 않은 것은 사실이죠. 다행히 아직까지 신종플루로 추정되는 환자는 없지만 다른 환자들이 발길을 끊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어느 개인병원은 신종플루 환자 자체를 받지 않는다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아요." 서울에서 내과를 운영하는 김 모 원장(55) 의 말이다.

이는 거점병원이 아닌 일반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변경된 지침에 따라 민간 의료기관에서도 의사의 판단에 따라 타미플루를 처방할 수 있지만 환자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신종플루 환자가 있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다른 환자가 끊긴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김 원장은 "환자 스스로 거점병원으로 가는 것이 모두에게 좋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거점모집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서울약국 약사는 "위치상 외국인도 많이 찾고 있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나서는 게 맞다"면서도 "그러나 정부가 민간 의료기관에 대해 최소한의 배려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다시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종플루 환자와 가장 많이 접촉하는 당사자인 의료진에 대한 예방대책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는 "신종플루 환자와 직접 접촉하는 의료진을 위한 예방 목적의 타미플루는 따로 마련되지 않았다"면서 "마스크조차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실정에 대해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의 한 실무자는 "신종플루에 노출되는 의료진에 대한 지원방안은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진료를 받기 위해 보건소나 일반병원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리는 신종플루 추정 환자들에 대한 대책은 전무했다. 그는 "보건소는 이미 의심환자를 진료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일반 병원이 환자를 꺼리는 것까지 제지할 근거나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좌훈정 대변인은 "건국 이래 이 정도 수준의 전염병은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시민은 물론 민간 의료기관과 보건소 모두 정부의 명확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가전염병 위기단계를 4단계인 '심각'단계(현재 3단계 '경계')로 격상시키고 민간 의료기관과의 유기적 협조를 통해 범정부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좌 대변인은 의심환자가 보건소, 일반병원, 약국 등을 전전하는 상황에 대해 "잠정적인 환자가 진료를 받기 위해 헤매며 신종플루를 전파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면서 "국민들의 불안감까지 부추기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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