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덕여왕(眞德女王)은 선덕여왕의 사촌 동생입니다.
선덕은 진평왕의 딸이고, 진덕은 진평왕의 동복아우인 갈문왕 국반(國飯)의 딸입니다.
선덕여왕의 동생인 천명공주의 아들 김춘추가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릅니다.
진덕여왕의 성명은 김승만(金勝曼)이고, 어머니는 월명부인 박씨입니다. 자태가 곱고 아름다웠으며, 키가 7척이었고, 팔을 늘이고 있으면 그 길이가 무릎을 넘었다 합니다.
즉위하던 해(647)에 선덕여왕 말년에 반란을 일으켰던 비담(毗曇)을 비롯한 30인을 붙잡아 처형하고, 알천(閼川)을 상대등에 임명함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꾀하였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통해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하였습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침공에 시달리던 진덕여왕은 김유신을 내세워 백제의 공격을 막는 한편 648년에는 김춘추를 당나라에 보냅니다. 김춘추는 군사적 지원을 구걸하다시피 하여 당 태종(太宗)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허락받는 데 성공합니다.
또한 김춘추의 건의로 중국 조정의 지원하에 내정(內政)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649년에는 중국의 의관(衣冠) 제도를, 650년에는 독자적 연호를 버리고 중국 연호인 영휘(永徽)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조치는 당나라의 선진문물 수용이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당나라에 대한 정치적 예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651년부터는 정월 초하룻날에 백관(百官)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던 정조하례(正朝賀禮) 제도를 실시하고, 품주(稟主)를 집사부(執事部)로 바꾸어 왕권을 강화합니다.
그러나 진덕여왕은 재위 8년 만에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여왕의 죽음으로 성골의 왕통은 끊어지고, 여왕을 이어서 개혁의 주체 세력이었던 김춘추가 왕위에 등극하면서 진골 출신의 왕통을 열어 놓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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